Lunes, Hulyo 13, 2020

한 지붕 두 남편 - 상편

여기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저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여자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리 평범한 여자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저는 저의 엄마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제 성과 이름 박 순나는 고아원에서 원장님이 붙여준 이름이지요.



고아원원장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37년 전의 어느 가을 날 직원이 출근길에 고아원 앞에 강보에 쌓인



저를 발견하고 안으로 데리고 갔는데 강보 안에는 오직 제가 태어난 날짜와 시각만 적혀있었다고 합디다.



그러니까 그 쪽지에는 1968년 9월 27일 이라는 쪽지 한 장만 달랑 있었답니다.



원장선생님이 제가 조금 커서 자신의 추측을 조심스럽게 저에게 이야기를 하였는데 저라는 한 많고 서름 많이 받고 자란



인간을 이 세상에 나오게 만든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를 임신한 엄마라는 여자가 낮 모르는 남자나 아니면



평소에 조금 알던 남자와 만나서 눈이 맞아 만든 크리스마스 베이비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마스라면 그 누구보다도 더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성년이 되어 더 이상 고아원에 머물 수 없게 되자 같은 고아원 출신인 한 사람의 도움으로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는 면도사가 되었습니다.



면도사라는 직종은 제 입에 풀칠을 하게 해 주었고 또 잠을 잘 곳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전 날 세탁한 타월을 걷어 개고 이발소 안의 청소부터 하고 청소가 끝나면 다시



그 큰 거울을 광나게 닦았고 그러고 나면 사장님이 출근을 하시고 손님이 오면 면도를 해 드리고



마칠 시간이면 손님들이 쓰고 난 그 많은 타월을 세탁하고 빨래 줄에 널고 나면 겨우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났습니다.



참 그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고아 출신의 부인을 둔 이발소 사장님에게 제 몸을 바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제가 그 이발소에 가서 일을 하기 시작한지 거의 보름이 지난 날 일과가 끝이 나고 이발소 한 편에 있는 골방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순나야, 너 여기 온지 이제 보름이 지났는데 어때 할 만 해?"평소 같으면 바로 집으로 갈 사장님이 말하였습니다.



"네, 사장님 덕분에 편해요"하고 말하자



"그래 보름도 지났고 순나 일 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참 내일이 노는 날인데 용돈이라도 있어야겠지?"하시며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주시기에



"괜찮아요"하며 안 받으려 하였으나



"이거 내가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너 일 잘한다고 주라 하더라"하였습니다.



제가 그 이발소에 가기 전에는 사모님이 하였는데 제가 들어 온 후에는 이발소에는 안 나오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저는 봉투를 받고 고개 숙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너 술 하니?"봉투를 건네준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고아원에 있으면서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안 받고 친해지려고 배운 술이



이발소에서 살면서 저의 가장 즐거운 동반자였고 친구였습니다.



사장님은 제가 매일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조금"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자



"그럼 나가자 우리 둘이지만 오늘 회식하자"하셨습니다.



"괜찮은데....."하고 말을 흐리면서도 안주 변변하게 없이 안 마신다는 것이 조금은 즐거웠습니다.



사장님과 저는 이웃에 있는 점심을 대어먹는 식당에 가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마셨습니다.



한 병 또 한 병 빈 병이 식탁 위에 다섯 개가 널려있었으나 사장님과 저는 말똥말똥하였습니다.



"사장님 이제 가게 닫아야 하는데요"식당 아주머니의 말에



"순나야 우리 이 찌개 가지고 가 가게에서 더 어때?"사장님이 물었습니다.



"네, 좋아요"어쩌다 이발을 하고 난 손님들이 거스름을 안 받아 가면 그 것이 제 술값의 전부였는데



사장님이 사 준다는 술은 전혀 부담이 없었기에 좋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아줌마 이 찌개 냄비는 모래 점심때 가져가요"사장님의 말에



"그렇게 하세요"하자



"순나 넌 이 것 가져가서 데워 난 소주 사 올게"하시기에



"네, 사장님"하고 냄비를 들고 이발소로 가서 데웠습니다.



"자, 여기서 먹기에는 불편하니 방으로 가자, 난 집에 전화 잠시 하고"하시며 전화기를 잡으시기에



"네"하고는 찌개와 술을 가지고 방으로 갔습니다.



"응, 그래, 응~응, 알았어 다른 곳에 못 가게 그래, 알았어 그래 끊어"사장님은 분명히 사모님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내용은 전혀 알아듣지를 못 할 이상한 말만하더니 방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것이 저를 그 이발소에 묶어 두기 위한 부부간의 치밀한 공작인 줄은 모르고.......



처음에 사장님은 분명히 저와 마주보고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에 다녀오신 사장님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 날 줄도 모르고 그저 공짜 술이라는 생각만으로 마셨습니다.



"순나야 나 어때?"사장님이 알 수 없는 것을 물었습니다.



"사장님이야 좋은 분이시죠"하자



"나도 순나가 좋아"하면서 저의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사장님은 사모님이 계시잖아요"하며 웃는데



"물론 집사람도 좋지만 우리 순나도 좋아"하시기에



"사모"막 말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사장님의 제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가더니 저를 힘주어 끌어안으며 제 입술을 덮쳤습니다.



"읍!"반항을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바지를 입으면 손님이 싫어한다며 치마 그도 무릎 위까지 올라가 치마는 있으나 마나 하였습니다.



방바닥에 눕혀진 제 치마 안으로 사장님의 손이 들어 온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손바닥보다 적은 팬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팬티는 사장님의 억센 손에 갈 갈이 찢어지고............



또 위에 걸친 유니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섹스라고는 물론 그 흔히 하던 자위 역시 한번도 안 해본 저로서는 사장님을 거부하기보다도 닥쳐올 고통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제 팬티와 가운을 찢으면서도 저를 힘주어 끌어안고 키스만 하였습니다.



사장님은 키스를 한 체 제 몸 위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사장님도 아랫도리는 맨살이었습니다.



그 것은 묵직한 야구방망이 같은 것이 제 보지 둔덕에 닿았기 때문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사장님의 한 손이 밑으로 오더니 제 보지 둔덕을 벌리고 그 야구방망이 같은 것으로 조금 입구에 대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움뿐이었고 또 사모님이 안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악!"제 보지 안으로 그 야구방망이 같은 것이 파고들자 그 고통은 말로 형언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장님 아파요 빼요"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순나 숫처녀였구나"눈물에 사장님의 흡족한 웃은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직 제 보지에 박힌 야구방망이 같은 사장님의 좆을 빼 주기만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순나 넌 이제 이발소의 내 마누라다, 알았어?"야구방망이 같은 것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말하였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대답하라고, 대답"힘주어 출납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예"힘 없이 대답을 하자



"그럼 그래 야지, 퍼…벅….퍽퍽퍽…퍽. 퍼…벅…퍽. 타다닥!!!"미치게 아팠습니다.



"사...사장님..... 아.....파...요.......학.!"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순나야 오늘만 아프지 나중에는 좋아진다. 퍽..퍽..퍽...철퍽....퍽...벅"야구방망이 같은 것으로 넣고 빼고



반복하는 것을 펌프질이라고 한다는 것은 얼마 안 가서였습니다.



"난 몰라요, 미치겠어,... 아아아.... 난 몰라요.... 하앗. 아파요"얼마간의 펌프질이라는 것을 더 한 후에



"죽인다 죽여, 빡빡해서 혼났네, 으~~~~~~~"하면서 제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박는 순간



"아~악! 뭐예요 뭐?"제 보지 안에 박힌 야구방망이 같은 사장님의 좆이 껄떡거리며 한 순간 더 굵게 느껴지더니 뜨거운 것이 제 보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널 여자로 만들어주는 좆물에게 감사를 드려야지, 휴~힘들다 힘들어"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 때서야 그 것이 정액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사장님 임신하면 어떡해요, 흑~흑~흑~"울면서 묻자



"지우면 된다 걱정 마"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였습니다.



다행이 임신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일은 그냥 지나가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거의 매일 사장님은 제 몸을 탐하였고 그러는 사이에 저도 점점 섹스의 맛을 알아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이 저를 범하고 이발소의 마누라라고 한 것도 실상은 사모님이 저를 이발소에 붙들어 놓기 위하여



사장님에게 저를 범하게 하였다는 사실이었고 봉급은 거의 쥐꼬리 수준만을 줄 핑계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자 저는 다른 이발소로 갔고 대우도 월등히 좋게 받았습니다.



물론 퇴폐 이발소에서 스카웃도 들어왔지만 마음도 없이 돈에 미쳐 제 더럽혀진 정조지만



돈으로 팔고는 싶지가 않아 사절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손님 중에 마음에 들면 일과 후에 만나서 섹스는 하였으나 차비니 뭐니 하며 손에 돈푼이라도



쥐어주는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안 만나는 것이 저의 신조이자 철칙이었으며 몸가짐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저에게 청혼도 들어왔으나 막상 고아라고 하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 좋아, 독신으로 산다 아니 살 것이다 하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2002년 11월 말 어느 날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가 제가 근무하는 이발소에 왔습니다.



"모래 군에 입대를 하니 빡빡 깎아주세요"이발소 사장님에게 말하자



"아~그래요 고생 꽤나 하겠군 열심히 근무해요"사장님이 그 청년의 머리를 빡빡 깎았습니다.



"박양, 이 손님 면도 해 드려 나 먼저 식사하고 올게 박양은 손님 면도 해 주고 먹어"하기에



"네, 먼저 드세요"하였습니다.



제가 당시에 근무를 하던 이발소의 사장님은 가게 안에 음식 냄새가 나면 안 좋다고 항상 식당에 교대로 가서 먹었습니다.



"총각 군대가면 힘들어 어떻게 해"면도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저만 가나요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다 한번은 치러야할 홍역인데"하기에



"그건 그래요, 애인은 있고 애인이 무척 섭섭하겠다"하자



"휴~애인은 무슨 얼어죽을 애인이요, 총각 딱지도 못 땐걸요"웃으며 말하기에



"그럼 총각의 총각 딱지 내가 때 줄까?"농담으로 하였는데



"정말, 절 놀리는 것은 아니죠?"반색을 하며 물었습니다.



농담으로 하였는데 반색을 하며 묻자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대답을 못하고 면도를 계속하자



"그럼 그렇지......"무척 실망스런 표정이 아주 안타까웠습니다.



"좋아, 우리 8시까지 일 하니까 8시 반에 여기 길 건너 골목 안에 00여관 305호로 와"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껏 셋방살이는 단 한번도 안 하고 여관에 달 방을 얻어서 살았습니다.



바로 그 방이 제가 묵는 숙소였습니다.



젊은 친구가 군에 가는데 그도 동정을 지니고 간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운데다 몇 일 적당한



섹스 파트너가 없어서 굶었던 터라 그 청년에게 한번 주기로 마음을 먹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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